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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통계시(?) 성경적인가?

Critical thinking(비판적사고)

by Going to Nations 2021. 7. 20.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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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전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때 20대 초반의 그 무신론자들이나
타 종교인들에게 적절한 대안을 찾기 위해 , 읽었던 당시의
Josh Mcdowell의 예수님에 관한 변증법,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는가? 아무도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미치광이었는가?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착각했는가?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미치광이가 써내려갈수 없는 성품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거짓말장이인가? 어떻게 거짓말을 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며
죽어갈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한가지 결론은 예수님은 자신이 말하셨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원자이시다는 것이다.

그후 많은 안믿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저는 이 짤막한 변증법을 통해,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신이
오히려 신뢰할수 없음을 말하곤 했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인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들을때도 정말 성경에 있나? 하고 찾아가며,
근거를 찾아가다보니 그게 어느새 습관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최근에 철학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서도 본질에 관한 질문을 해가는 철학이 무척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철학에 대한 정의를 다양한 철학자가 내리는데, 한 철학자가 "철학은 마치 어린아이가 왜? 왜? 라고 물어보는 것 처럼,
질문에 대해 질문해가며, 어떻게 보면 유치할수 있는 질문을 통해 진리를 파악하는 학문" 이라고 했을때
그 정의가 바로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Critical Thinking (비판적 사고) 기르기는 철학에서 비롯된 논리학의 한 부분으로,
영국의 한 대학에는 이 학문으로 석사를 줄 정도로 심화된 학문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습니다.

유투브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확증 편향에 쉽게 빠지는 요즘 세대에
더더욱 비판적 사고를 통해, 우리는 주변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요구들 가운데서,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는 삶의 필수적 생존 기술이라고 생각됩니다.

비판적 사고 기르기를 우리 삶에 쉽게 적용하는 방법은
누군가가 A는 B이다 라는 명제를 말하면 우리는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출하게 되었는지,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지, 어떤 편견이 그 주장에 흐르고 있는지 점검해 보면 됩니다.

우간다 북부 수단 난민캠프/ 유달리 다양하게 때로는 너무나 황홀하게 하나님이 만들어가셨던 그림들


얼마전 읽은 어떤 블로그에서 "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그런 위험한 주장(?)을 하니깐 이단" 뭐 이런 글을 유사한 다른 블로그에서 짜집기해서 여기저기 퍼 나르는 블로그들을 볼수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의 주장..오늘날은 직통계시가 없다 라는 주장을 증명하는 무슨 근거가 있나 하고 읽어보니 성경적 근거는 없었습니다. 단지 오늘날도 직통계시를 주장한다니 뭐. 이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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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글들을 복사- 붙이기 해서 많은 블로그에 검색될 정도였습니다. (참고로 이런 많은 류의 포스트들이 미국의 유명한 Cessationist 인 John Macarthur 목사님의 책들이나설교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 분들의 공통된 특징을 보니, 하나님께서 개인들에게 직접 말씀하신다고 하는게 아니라, 굳이 직통계시(?)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뭔가 미신적이고, 위험하게(?) 보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많은 종교인들의 도전을 받으실때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변하셨을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질문에 질문으로 응수 하심으로써
그들의 논점이 얼마나 희박한지를 증명해보이셨습니다.

여전히 직통계시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질문 한가지,

오늘날에 여전히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근거가 성경에 있습니까?


.....
(침묵)
....
...
그리고 어떤 분은 이렇게 대답할수도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12절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이 말씀은 대표적으로 오늘날에는 은사가 중단되었다는 중단주의(Cessationism) 편에 서신 분들이
위 고린도 전서 13장 12절의 온전한 것을 "성경"으로 해석하면서 성경, 정경의 완성으로
더 이상 은사는 물론이거니와 직접적인 계시는 멈췄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해석을 할수 있겠지만, 아마 성경에서 직접적인 근거를 댈수가 없을겁니다.

성경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말씀은 넘쳐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 말씀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떠나가시면서 하시는 말씀

요한복음 14장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21절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한복음 15장 15절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 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한복음 16장 13절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절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0장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마가복음 13장 11절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40편 5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수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수도
없나이다.

시편 139편 17절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절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 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셀려야 셀수 없는 주님의 우리를 향한 그 생각들이, 어느날 갑자기 "말씀"이신 그 분이 우리를 향한 말씀을
멈추었다는 근거는 어디서 온것일까요?

로마서 1장 19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한 성경 이외에도 그 분이 만드신 모든 자연 만물에 하나님을 알도록, 인정할수 밖에
없도록 자신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하나님앞에서 변명하지 못하도록
이미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결혼, 이사, 직장, 그리고 수 많은 관계나 삶의 도전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멈추었다는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인가요?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것들이 성경 그 자체와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려는게 아닙니다.
이미 성경은 완성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의문점에도 성경 66권을 통해서
온전히 그분을 표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창의적이신 분이십니다.
노아에게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그 sign으로 무지개를 만들어서 보여주었습니다.
모세에게는 말씀하시기 위해서 떨기나무를 불로 태우시고는 나무가 타지 않는 것을 보며 신기해하며
다가오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안 믿는 자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환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수년전 미국으로 가기전 예언사역에 대해 강의를 들으면서, 일상의 삶에서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스스로 훈련하던중, 걷다가 여동생의 남편 같은 사람이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의 버스 승강장에
서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강의 내용이 떠오르면서, 성령님께 물어보고 기도하면서 매제가 혹시 한국에 왔냐고 물어보니
외국에 근무하던 매제가 바로 며칠전 집에 도착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조금만 우리의 마음을 열때 주님의 우리를 향한 생각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얼마나 많으신지 깨닫게 될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 말씀이 우리 모두의 삶에 일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시편 40편 5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수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수도
없나이다.

시편 139편 17절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절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 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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